우리는 당첨되는 장면까지만 상상합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어권에는 'Lottery Curs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거액에 당첨된 사람들이 몇 년 안에 파산하거나, 가족을 잃거나, 이전보다 불행해지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미신처럼 들리지만, 이 표현이 생길 만큼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물론 모든 당첨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히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만 "당첨되면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전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20억 원을 관리해 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갑자기 그 돈이 생기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큰 돈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집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가족에게 나눠주고, 사업을 시작하고... 20억이 순식간에 줄어듭니다.
당첨 사실이 알려지면 연락이 옵니다. 오랜만이라는 친척, 잊고 지내던 친구,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
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합니다. 거절하면 "저 사람 변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관계가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 매일의 구조와 사회적 관계가 함께 사라집니다. 처음엔 자유로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허해집니다.
사람은 일을 통해 정체성과 소속감을 얻습니다.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돈이 있어도 삶은 흔들립니다.
심리학에서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처음 좋은 차를 사면 행복합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그건 그냥 내 차가 됩니다. 다시 행복하려면 더 좋은 것이 필요합니다. 이 순환에는 끝이 없습니다.
연구자들이 복권 당첨자들의 행복도를 추적했을 때, 당첨 직후 급상승한 만족도가 시간이 지나며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관찰되곤 했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돈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실제로 잘 지낸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액인 407억 원 당첨자는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제로는 국내에서 조용히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금액이 아닙니다.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당첨자를 보호합니다. 복권 및 복권기금법 제10조는 당첨자 본인의 동의 없이 당첨자를 식별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공개하거나 제공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부 주에서 당첨자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곳에서는 당첨자가 언론에 노출되고, 그 결과 온갖 접근에 시달립니다.
즉 한국에서는 본인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이건 굉장한 보호 장치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방패를 버리지 마세요.
로또를 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하는 상상, "당첨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돈은 많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도 함께 가져옵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새로운 문제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복권 구매를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고 느끼신다면,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도움을 받으세요.